며칠 전, SBS 뉴스에서 남해군 상주면의 지방소멸 대응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이 많아 자료를 찾아본 후 변화의 과정과 시사점을 정리했습니다. (해당 뉴스 보기)
2015년, 상주면은 인구 1,730명의 작은 바닷가마을이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각각 1곳씩 있었고 5~14세 아이들은 67명이었습니다.
변화의 시작점이었던 상주중학교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상주면의 자랑 ‘상주은모래비치’가 있습니다. 상주중학교는 2016년부터 경남 최초의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로 운영되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어떤 교육과정이 있었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참 행복하겠다 생각이 듭니다.
대안학교 1기생은 30명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가족 모두가 내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학교 하나 때문에 가족 전체가 이주하긴 쉽지 않겠지요. 상주중학교에서 기숙사를 제공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아이들만 내려보냈습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보러 1주일에 한 번씩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중 한 명이 이종수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입니다. 처음엔 아이만 내려보냈는데 본인도 도시의 삶을 탈피하고 싶었던터라 결국엔 상주로 이주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상주로 이주하기 전, 마을에 내려올 때마다 마을 이장을 만나며 친분을 쌓았습니다. 마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장과 친해지니 다른 주민들과 밥도 먹고 술도 먹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정착 초기에 이들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상주중학교의 학부모들은 대안학교의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학교보다 관계가 끈끈했습니다. 항상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다보니 서로의 친목도 쉽게 쌓였습니다. 서로 친해지고 아이들도 있고 자연환경도 좋으니, 먼저 내려온 이종수 이사장처럼 하나둘씩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학부모들 주축으로 만든 것이 동고동락협동조합입니다. 학부모 40명과 교장선생님, 선생님이 참여했습니다.
동고동락의 초기 활동은 아이들과 학교 중심의 사업들이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을의 빈집을 고쳐 ‘상상놀이터’를 만들고 돌봄교실도 운영했습니다. 아이들이 기숙 생활을 하다보니 저녁에 간식을 많이 찾았는데 시골이다보니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저녁 간식 나눔 사업도 추진했습니다.
동고동락은 학부모뿐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도 만들었습니다. 주민을 위한 취미교실, 인문학 강의, 마을 여행 프로젝트 등을 했고, 지역 특산물 판매사업도 운영했습니다. 멸치, 어간장, 굴, 바지락, 갈치 같은 상주의 로컬푸드를 지인 중심으로 판매해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상상놀이터 옆에 어른들을 위한 공간도 만들었습니다. 마을 커뮤니티 공간 겸 식당으로 운영하는 ‘동동회관’입니다.
아이들과 귀촌 학부모들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공동체를 만들다보니, 사는 사람도 좋고 오는 사람도 좋은 마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5년 67명이었던 5~14세 아이들은 ’22년 91명이 되었고, 귀촌한 학부모는 30여 가구에 이릅니다. 작년에는 무려 10명의 아이들이 상주중학교 입학을 신청했으나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상주면 5~14세 인구 증가 추세>
(출처: 국가통계포털)
대안학교가 지방소멸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지방소멸은 순환의 문제입니다. 일자리와 소득이 부족하니 사람들이 떠나고, 사람들이 떠나니 생활 인프라가 축소되고, 생활이 불편해지니 다시 사람들이 떠나며 지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며 일자리와 소득이 감소합니다.
상주면은 지금 이런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그 시작점이 대안교육이었습니다. 대안교육만으로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안교육이 아이들을 모으는 힘을 발휘했고, 학부모들이 마을에 활력을 넣고 일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종수 이사장은 상주면에 빵집이 없어서 빵집을 열려다 서울에서 장사하는 후배까지 상주로 이주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빵집이 생기니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며 소득과 일자리도 생겼습니다. 동고동락협동조합도 상근 직원 5명을 고용 중이라고 합니다.
대안교육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역 자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지역 고유 자원을 탐색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아이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자원이 있다면 그것은 ‘고유한’ 자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소수가 좋아하더라도 열렬히 좋아할만한 자원이 더 큰 힘이 됩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가치는 희소성에서 기인하고 희소성은 고유성에서 기인합니다. 전국에 많은 대안교육 학교가 생겼지만 교실 문 앞에 은모래 해변이 펼쳐진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지방소멸의 대응은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일이며 지역의 고유자원은 순환의 시작점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자원’이 아니라 ‘고유성’입니다.
상주면이 풀어가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청년 일자리의 안정성입니다. 2016년 입학한 아이들은 이제 스물살이 넘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들이 여전히 상주에 살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5~14세 아이들은 증가한반면 20~24세 인구는 ’16년 76명에서 ’22년 47명으로 감소했습니다. 25~29세 인구도 45명에서 35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상주의 해와 바다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다시 떠난다면 상주의 선순환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이종수 이사장을 비롯한 학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남해군은 동고동락협동조합과 함께 ‘보물섬 인생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7천여평 부지에 교육문화 공간과 주거단지, 생태숲과 생태농업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상주를 오가는 생활인구가 되면 청년과 마을의 일자리도 안정적으로 늘어나겠지요.
지방소멸이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닥친 것 같지만 오랜기간 진행되어 왔습니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주면의 선순환은 이제 겨우 7년이 지났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은모래처럼 반짝반짝한 성과를 이룬 상주 주민들에게 찬사와 응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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